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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1] 이회영 선생을 기리며 - 우당 기념관 방문

저번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11월에 어떻게든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립 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념하여 지어진 우당 기념관입니다.


순국선열의 날이자 이회영 선생이 순국하신 11월 17일을 기리며 글을 올립니다.





찾아가기 어려운 위치는 아닙니다만, 주택가 같은 곳에 있더군요.



우당기념관의 관람시간 안내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양쪽에 이회영 선생에 대한 기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이회영 선생의 흉상.



올해 3월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이회영 선생을 명예 졸업자로 선정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중 한 분인데... 늦게나마 대우를 받는 것 같네요.



이회영 선생의 연표.



입구에는 이회영 선생 및 독립 운동에 대한 팜플렛이 있습니다. 



기념관 한 쪽에 2010년 KBS에서 방영한 특별기획 5부작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 포스터가 있습니다.


시청률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였지만, 매 화 마지막에 이회영 선생의 행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같이 나와 상당히 인상깊게 본 드라마였습니다. 제가 이회영 선생에 대해 알게된 계기 역시 이 드라마였습니다.



다른 독립 운동가 분들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만, 이회영 선생의 경우 업적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시기도 합니다. 경술국치 이후 6형제 모두가 가문의 재산을 전부 급처분하고(현재 가치로 대략 600억) 그 돈을 독립자금 삼아 만주로 떠났다는 일화 정도만 어디서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회영 선생 본인이 비밀리에 독립 운동을 하다보니 본인이 남긴 기록은 거의 없고, 같이 독립 운동에 앞장 선 부인 이은숙 여사의 수기 등 주변인의 기록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어서 그다지 널리 알려지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회영 선생이 주도적으로 조직 및 참여한 독립 단체만 열거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상동교회 - 신민회 - 경학사 - 신흥강습소(훗날 신흥무관학교) - 의열단 -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다물단 - 남화한인청년연맹 - 흑색공포단




또한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며,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선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고종 망명을 추진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종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요.


이후 임시정부의 초대 의정원 의원 중 한 명으로써 정부수립의 기초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수립 된 이후 독립 운동가들끼리의 자리다툼이나 분파등으로 분열되자 이회영 선생은 베이징으로 돌아가 아나키즘 운동 및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1920년대엔 만주 지역의 독립군과 연계하려고 김좌진과 서로 연락하기도 하였으나 김좌진의 암살로 인해 실패합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32년 직접 만주로 가 항일의용군 결성 및 독립기지 건설을 수행하려 하였으나 다롄에서 밀정들로 인해 체포, 모진 고문 끝에 그 해 11월 17일 67세의 나이로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이회영 선생의 유해는 뤼순 감옥에서 화장되어 1932년 11월 28일 경기도 개풍군(파주) 선영에 묻혔습니다. 이후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기념관에 있는 이회영 선생의 난초 그림입니다. 석파란(흥선 대원군의 난초 그림)의 대가였던 이회영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난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아나키즘, 아나키스트가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자'로 번역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국가를 부정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원인 아나키(Anarchy)가 무정부상태를 뜻하는 것과 다르게, 아나키즘은 단순히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권력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즉 단순히 정부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자본, 문화단체 등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이든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사상입니다. 미국의 리버테리어니즘(자유의지주의)와 비슷한 노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리버테리어니즘을 아나키즘의 분파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즉 아니키즘은 권위를 부정하는 무권위주의 라고 하는 게 올바릅니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전 세계가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팽배했기에, 이런 혼란 속에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바라며 아나키즘 아래서 독립운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회영 선생이시고, 그 외에도 의열단 및 의열단 단장이였던 약산 김원봉, 단재 신채호, 박열 등이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도 일부에서는 아나키스트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중국인 및 일본인들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협력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중매체의 왜곡도 한 몫 하는게, "이 세상은 답이 없으니 싹 다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란 식으로 '아나키'를 신봉하는 건 허무주의자인데도 싸 잡아서 아나키스트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반대로 아나키스트를 잘 묘사한 예로는 폴아웃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묵시록의 추종자(Followers Of The Apocalypse)'가 있습니다. 아니키즘이 추구하는 무권위주의와 조화로운 질서에 대한 목적 의식이 잘 드러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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