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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스트의 심심풀이 공간
[리뷰]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Assassin's Creed OST - Flight Through Jerusalem

 

함락되는 예루살렘.

 

 

12세기, 성지 예루살렘(Jerusalem)이 이슬람 군주 살라흐 앗 딘에게 점령되자, 이에 기독교 세력인 유럽 군주들은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명목 아래 군대를 파견하게 된다. 1189년, 3차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191년 6월 8일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가 전장에 도착, 7월 12일 살라흐 앗 딘에게 점령되었던 예루살렘 왕국의 항구 도시 아크레(Acre)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아크레를 되찾은 리처드 1세는 그 기세를 몰아, 예루살렘 탈환을 시작하기 위해 야파(Jaffa)를 탈환하러 출정한다. 허나 이를 눈치챈 살라흐 앗 딘은 9월 7일 아르수프(Asruf)에서 리처드의 군대를 습격한다. 그러나 가니에르 드 나폴루스(Garnier de Naplouse) 가 이끄는 구호 기사단(the Knights Hospitaller), 로베르 드 샤브레(Robert de Sable)가 이끄는 성당 기사단(Knights Templar) 등 동맹군의 합류로 리처드 1세는 아르수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후 야파를 점령해 예루살렘의 이슬람 세력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허나 리처드 1세의 군대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피로가 쌓인 상태였고, 프랑스의 필리프 2세(Philip II of France)와의 불화로 인해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192년 9월 2일 리처드 1세와 살라흐 앗 딘은 서로의 점령지를 인정한다는 휴전을 체결하게 된다. 이로서 제 3차 십자군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실제 역사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알려진……

 

 

 

 

2012년 9월, 바텐더로 살아가던 데스몬드 마일즈(Desmond Miles)는 영문도 모른 채 다국적기업 앱스테르고(Abstergo)에 끌려와 애니머스(Animus)란 기계에서 일어나게 된다.

 

데스몬드는 워렌 비딕(Warren Vidic)과 루시 스틸만(Lucy Stillman)에게서 “그의 DNA 안에 보관된 조상의 기억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 애니머스는 DNA로부터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기계였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기억은 데스몬드의 먼 조상, 암살자 알타이르 이븐 라하드(Altaïr Ibn-La'Ahad, 이하 알테어)의 특정 기억이었다. 데스몬드는 비딕의 협박에 의해 애니머스 안에 들어가 3차 십자군 전쟁 당시 알테어의 기억을 불러오게 된다.

  

 

한편 마스터 어쌔신인 알테어는 성당 기사단의 보물을 가져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그의 오만함으로 인해 암살단을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 암살단의 수장이자 알테어의 스승인 알 무알림(Al Mualim), 라시드 앗 딘 시난(Rashid ad-Din Sinan)은 그 죄를 물어 알테어의 계급을 수련생으로 강등시킨 후,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의 주요 인물 9명을 암살해 스스로 죄를 씻고 본래의 계급에 어울리는 자임을 증명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목표 기억에 가까워 질 수록, 그리고 암살 임무를 달성할수록 데스몬드와 알테어는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되었음을 알아가게 된다.

 

 

 

매력적인 스토리, 하지만……

 

“누구나 책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원하는 걸 마음대로 책에 쓸 수 있네. 뭐든지 말이야!”

 

- 워렌 비딕, 역사책이나 성경 내용이 전부 조작되었음을 데스몬드에게 알려주면서

 

어쌔신 크리드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스토리입니다. 어쌔신 크리드는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과 유명한 음모론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 등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알테어를 통해, 십자군 전쟁 중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3차 십자군 전쟁 속에서 실제 그 당시 영향력 있던 실존 인물들을 암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먼 과거에 전해져 온 유물의 힘을 통해 전 세계의 인간을 하나로 통합시켜 자신들의 통치 아래에 두려는 계획, 즉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각주:1]를 꾸미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앱스테르고의 문서를 훔쳐 보는 데스몬드

 

2012년, 작중 시점으로 현재에서 데스몬드(플레이어)는 3차 십자군 전쟁 당시 성당 기사단의 계획은 현재에도 여전하며, 그 계획이 머지않아 시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목적을 지녔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식은 다른 두 세력의 대립 - 절대적인 평화를 위해 인류의 자유 의지(free will)을 지키려는 암살단과, 절대적인 평화를 위해 인류를 통제하려는 성당 기사단 – 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저 온 자들(These who came before)의 유물, 에덴의 조각(Piece of Eden).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이 모든 내용들을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지나친 반복 플레이, 그리고 부족한 몰입감

 

어쌔신 크리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암살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 무알림의 명령 – 해당 도시의 지부 도착, 라피크와의 대화 – 도청, 소매치기, 심문, 정보원의 부탁 같은 방법으로 암살 대상에 대한 정보 조사 – 라피크의 허락 – 대상 암살 – 알 무알림과의 대화

 

문제는 정보 조사 과정입니다. 모든 정보 조사 과정은 얻는 정보만 다를 뿐, 그 과정은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플레이어는 “아 XX, 또 정보 조사야?”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며, 본 스토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빨리 저 놈 죽이고 게임 끝내야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자의 경우 특히 깃발 수집이 가장 귀찮았다.

 

또한 지도를 밝히기 위해 각 도시의 높은 곳에서 신뢰의 도약(Leap of Faith)을 한다던가, 병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시민들을 구해 자경단이나 학자들을 아군으로 삼는 기능은 플레이가 계속될 수록 플레이어를 귀찮게 만드는 주요 원흉입니다. 깃발 수집?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우와~" 나중에는 "…"

 

그리고 게임을 하는 동안, 플레이어는 데스몬드나 알테어라는 캐릭터에 몰입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데스몬드의 경우 말 그대로 기억만 불러오는 매개체 수준이고, 알테어의 경우 정보 조사 – 암살의 연속이기에 알테어라는 인물보다는 암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게다가 게임의 시점 또한 그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큰 원인입니다. 특히 데스몬드의 행동마다 나타나는 CCTV 영상을 보는 듯한 연출 –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의 인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방관자라는 걸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시, 사운드, 그리고 싸움.

 

어쌔신 크리드에 등장하는 세 도시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거기에다 로딩 없이 한 도시의 전 지역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는 건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래픽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정말 이런 그래픽으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상당히 정교한 그래픽을 자랑합니다.

 

이슬람 문화권 다마스쿠스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는 아크레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예루살렘

 

거기에 각 도시의 특색에 맞추어진 BGM과, 다양한 NPC들의 음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가령 예루살렘의 BGM에서는 나지막하게 라틴어로 된 기도문이 들리고, 알테어가 건물을 타면 주위에서 “저 녀석 제정신인가?” 같은 대사를 던집니다.

 

물론 플레이어의 살의를 불러오는 거지들의 구걸소리, 정신병자의 히히덕거리는 소리도……

 

그리고 플레이어가 추격을 받을 때나 싸움에 말려들었을 경우, 재생되던 해당 도시의 BGM이 박진감 넘치게 변하고 경계상태가 풀리면 바로 잔잔해지는 건 정말 일품입니다. 웅장한 BGM을 들으며, 매혹적인 도시들의 옥상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건 다른 오픈 월드 게임에서 느끼기 어려운 쾌감입니다. 거기에 신념의 도약까지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어쌔신 크리드의 전투는 상당히 쉽습니다. 적들에게 공격을 받으면 동기화 수치(체력)가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됩니다. 즉, 싸움에서 밀리더라도 방어를 하면서 체력을 회복시키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거기에 전투를 쉽게 해주는 반격기(Counter)가 존재합니다.

 

퍽퍽… 헉헉… "이 맛에 반격기를 씁니다"

 

단순히 전투를 쉽게 만들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반격기 특유의 화려한 연출 때문이라도 플레이어는 반격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거기에 Xbox360패드와 함께 한다면 웬만한 액션게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암살 게임의 새로운 역사를 쓰

 

“저는 군중 사이에 있는 칼날이니, 그들은 절 찾지 못할 겁니다.”
- 알테어


암살 게임으로 유명한 게임으로는 히트맨(Hitman) 시리즈가 있습니다.[각주:2]

 

한때 암살자 하면 연상되던 바코드 대머리 코드네임 47

 

같은 암살게임이면서도 두 게임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군중입니다. 위의 알테어의 대사처럼, 플레이어는 수많은 군중 중 하나에 불과하기에 군사들은 알테어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붕을 뛰어 다니거나, 짐을 들고 다니는 NPC를 밀쳐 짐을 떨어트리게 만든다면 높은 주목을 받게 되고, 칼을 빼 들거나 누군가를 죽인다면 바로 달려듭니다.

 

 

거기에다 이 군중이라는 요소는 암살을 수행하는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특히 학자들의 경우, 잘 경비된 지역일지라도 학자들 사이에 스며든다면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경단의 경우는 암살 후 도주할 때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좋은 친구들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기존의 암살 게임(히트맨 시리즈 말고도 Grand Theft Auto 시리즈 등)이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벌어지는 청부살인이라면, 알테어의 경우는 Assassin 이라는 단어의 기원답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명한 자들을 살해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Assassinate 란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시 암살(暗殺), 즉 몰래 죽인다는 의미로만 번역되기에 “왜 암살자가 설치는 거냐” 라는 소리도 들은 적 있었습니다. 허나 이것은 Assassinate 의 진짜 의미를 감안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착각입니다.

 

Assassin
: a person who murders a famous or important person, esp. for political reasons or in exchange for money
정치적인 이유나 돈을 목적으로 유명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살해하는 사람.

Assassinate
: to murder a famous or important person, esp. for political reasons or in exchange for money
정치적인 이유나 돈을 목적으로 유명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

 

(Definition from the Cambridge Academic Content Dictionary © Cambridge University Press)

 

 

 

마치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어쌔신 크리드는, 매력적인 스토리를 내세웠지만 스토리 텔링에서 큰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시리즈 내내 큰 떡밥으로 작용하는 것들이 이미 어쌔신 크리드에서 나왔음에도, 후속작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토리 텔링이 별로라고 해서 그 스토리마저 별로인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실제 역사와 유명한 음모론들이 작가들의 상상력과 결합되어 마치 플레이어는 게임상의 시나리오가 진짜 사실, 역사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거기에 웅장한 BGM, 매혹적인 도시들의 옥상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과 박진감 넘치는 전투들은 수많은 오픈 월드 게임 중에서 어쌔신 크리드를 독보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입니다.

 

후속작들이 나올수록 전작을 뛰어넘는 발전을 보여주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그 첫 작품을 해보지 않고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즐겨보았다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Assassin's Creed 스토리 공략(대사 번역) 링크

 

 

 

 

 

 

 

 

 

 

  1. 인류를 하나로 통합, 통제한다는 음모론. 자세한건 필자의 포스팅 참조(링크) [본문으로]
  2. 여담으로, 어쌔신 크리드의 OST를 작업한 Jesper Kyd는 히트맨 시리즈의 OST도 담당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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